대한민국 축구도 바르셀로나 ‘티키타카’? 스페인 감독 선임, 작은 선수들이 세계를 지배했던 축구가 올까
한국 축구가 새로운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스페인 축구다.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스페인 출신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한국 대표팀도 이제 티키타카를 하는 걸까?”
스페인 감독이라고 해서 곧바로 전성기 FC바르셀로나나 스페인 대표팀의 축구가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레노 감독이 걸어온 길과 그가 경험한 축구를 살펴보면 한국 대표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예상해볼 수 있다.
스페인 축구하면 떠오르는 ‘티키타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축구를 지배했던 하나의 철학이 있었다.
바로 티키타카(Tiki-taka)다.
짧고 빠른 패스를 반복하며 공의 소유권을 유지하고, 상대 선수들을 움직이게 만든 뒤 발생한 공간을 공략하는 축구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끌었던 FC바르셀로나와 2008~2012년 세계 정상에 섰던 스페인 대표팀이 대표적이다.
당시 스페인의 중심에는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처럼 압도적인 체격을 갖추지 않은 선수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팀들을 상대로 경기를 지배했다.
방법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웠다.
사람보다 공을 빠르게 움직이는 것.
공을 받기 전에 주변을 살피고, 한두 번의 터치로 패스를 연결하고, 패스 후 다시 움직이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몸싸움으로 상대를 이기는 대신 공과 공간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그렇다면 한국도 티키타카를 할 수 있을까?
이번 모레노 감독 선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국 대표팀이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항상 체격과 힘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도 필요하다.
기술, 패스 속도, 움직임 그리고 위치 선정이다.
한국 선수들의 기술 수준과 유럽 무대 경험은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다룰 수 있는 선수도 많고 빠른 스피드를 가진 자원도 있다.
이런 선수들의 장점을 하나의 패스 시스템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한국 축구의 경기 방식 역시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감독 한 명이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바르셀로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들의 장점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느냐다.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은 누구인가?
로베르트 모레노는 유명 선수 출신 감독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지도와 전술 분석 분야에 집중했고 특히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 오랜 기간 함께했다.
AS 로마와 셀타 비고를 거쳐 FC바르셀로나 코칭스태프에서도 활동했고 이후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루이스 엔리케를 보좌했다.
2019년에는 루이스 엔리케가 대표팀을 떠나면서 직접 스페인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따라서 모레노는 단순히 ‘스페인 출신 감독’이라는 것보다 스페인의 현대적인 위치 플레이와 빌드업, 압박 시스템을 오랫동안 경험한 전술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레노의 축구는 과거 티키타카와 조금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야 한다.
모레노 감독이 스페인 출신이라고 해서 2010년 스페인 대표팀의 축구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스페인 축구는 단순히 공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왜 공을 가지고 있는가’다.
패스로 상대를 움직이고, 상대 수비가 이동하면서 발생한 공간을 찾아내며, 그 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한다.
그리고 공을 빼앗겼을 때는 즉시 압박해 다시 소유권을 가져오려고 한다.
과거 티키타카의 패스와 점유 철학에 현대 축구의 강한 압박과 빠른 공수 전환이 결합됐다고 이해하면 쉽다.
‘공 돌리기’와 티키타카는 다르다
티키타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오해도 있다.
센터백끼리 패스하고 다시 미드필더에게 연결했다가 또 뒤로 돌리는 모습을 보고 티키타카라고 부르는 경우다.
하지만 목적 없이 패스 횟수만 늘어나는 것은 티키타카의 핵심과 거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패스로 상대를 움직이는 것이다.
상대 미드필더가 공을 따라 앞으로 나오면 그 뒤에 공간이 생긴다.
수비진이 한쪽으로 이동하면 반대편 공간이 열린다.
그 순간 패스의 방향과 속도를 바꿔 빈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현대 축구에서는 중앙과 측면 사이에 형성되는 하프스페이스(Half-space)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좋은 점유 축구는 공을 오래 갖는 축구가 아니라 공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움직이는 축구다.
한국 선수들에게 오히려 잘 맞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 축구를 오랫동안 따라온 팬이라면 대표팀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했던 단어들이 익숙할 것이다.
투지, 활동량, 스피드.
하지만 현재 한국 대표팀을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선수들의 수준과 특징이 상당히 달라졌다.
유럽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이 늘었고 좁은 공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기술적인 선수도 많아졌다.
여기에 한국 선수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활동량과 스피드를 조직적인 압박 시스템에 결합한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축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특히 체격이 상대보다 작다는 것이 반드시 약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성기 스페인이 그것을 증명했다.
상대보다 몸이 작다면 공을 더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축구는 아니다.
‘한국판 티키타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이유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국가대표팀은 클럽팀과 다르다.
선수들이 매일 함께 훈련할 수 없고 A매치 기간에 짧게 모여 전술을 맞춰야 한다.
정교한 위치 플레이와 빌드업 시스템은 선수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위치뿐 아니라 동료와 상대 선수의 움직임까지 이해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특히 상대가 강하게 전방 압박을 걸었을 때 후방에서 얼마나 침착하게 공을 풀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과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티키타카가 아니라 우리 진영에서 공을 돌리다 빼앗기는 위험한 축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초반에는 결과만큼이나 대표팀의 경기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축구가 봐야 할 것은 ‘점유율’이 아니다
새 감독 체제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경기 종료 후 표시되는 점유율 숫자가 아니다.
점유율이 60%라고 해서 좋은 점유 축구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장면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방에서 상대 압박을 짧은 패스로 벗겨낼 수 있는가.
미드필더가 공을 받기 전에 주변을 확인하고 움직이는가.
공이 한쪽으로 몰렸을 때 반대쪽 공간을 빠르게 활용하는가.
그리고 공을 빼앗긴 직후 선수들이 동시에 압박에 들어가는가.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면 한국 대표팀에 스페인식 축구 철학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선수들이 세계를 지배했던 축구,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스페인 축구가 세계에 남긴 가장 강렬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분명했다.
축구에서 반드시 가장 크고 가장 강한 선수가 경기장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비와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들은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거나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생각했고 공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조직적인 시스템으로 완성되자 세계 최고의 팀이 됐다.
한국이 전성기 스페인이나 바르셀로나의 축구를 그대로 복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국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스피드와 활동량, 기술적인 장점에 스페인식 위치 플레이와 빌드업 철학을 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의 티키타카’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이 짧은 패스로 상대 압박을 벗어나고, 상대를 움직여 공간을 만든 뒤 빠르게 침투하고, 공을 빼앗긴 순간 여러 선수가 동시에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스페인 감독을 선택한 한국 축구.
이번에는 정말 경기장에서 다른 축구를 볼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0 댓글